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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데나 녹색 갖다 붙이지 마라”

[머니투데이 정영화기자][머니위크]<쿠오바디스 한국경제>저자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미시경제학> <경제학원론>의 저자로 유명한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작심한 듯
제대로 쓴소리를 했다.

그가 정부 정책을 정면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책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준구 교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순수 토박이 서울사람이다. 지역색도 전혀 없고, 본인 역시
어떤 이념이나 색깔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그동안 연구에만 거의
몰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최근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사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쏠리는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고. 사회가 온통 보수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있는데, 그것도 합리적인 보수가
아니라 ‘도그마’에 가까운 보수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준구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 연구실을 찾았다.

◆“대규모 토목공사는 친환경 될 수 없다”

그는 보수 쪽에도, 진보 쪽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사업’ 등 정부정책에 대해 비판했다는 이유로 소위 ‘좌빨’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것은 이념과 상관없는 것이었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다.

한 마디로 “오른쪽이냐 왼쪽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옳은 쪽이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토목사업이라고 불리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본격적으로 돛을 달았다.
사업비가 무려 14조원 규모다. 덕분에 주식시장에서는 관련 기업들의 주식이 폭등세다.
‘녹색’이 신나게 돈 바람을 맞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친환경 사업이라고 말하는 ‘녹색’ 뉴딜에 대해 이 교수는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자연은 최대한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입니다. 강바닥에 시멘트를 깔고 주변에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유람선을 띄우는 것이 어떻게 친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강바닥에는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어야 하고, 강 주변은 갈대와 모래밭이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인
것이지요."

그는 특히 지금 하고 있는 녹색 뉴딜사업이 당장 환경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추후에
서서히 그 영향이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지금 당장은 환경의 피해가 나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수년, 수십년의 시간이 흐르면 그
피해가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정책을 세운 당국자들은 모두
은퇴해 있을 것이고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피해는 결국 우리와
후손들이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 아닌가요?”

물론 녹색과 관련된 사업 가운데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LED사업, 하이브리드카와 같은 산업은
앞으로도 추진해 가야할 미래지향적인 사업이라는 데 동의했다. 화석원료만으로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만큼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친환경
녹색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는 결코 친환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한 마디로 아무데나 ‘녹색’이란 글자를 붙이지 말라는 것이다.

◆“경기부양하려면 저소득층을 살려야”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와 건설이 경기부양의 목적에서라면 얼마든지 다른 데에서도 가능
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예를 들어 교육이나 사회복지, 연구개발(R&D), 사회 인프라 구축
등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중산층 이하인 서민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매우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부의 편중이 심하면 심할수록 소비는 더욱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소수의 부자가 많은
소비를 담당할 것이란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자의 소비에는 한계가 있으며 대부분의
소비는 저소득층에서 일어납니다. 소비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회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특히 조세부담에 있어서도 이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종부세를 폐지함으로써
부자들에겐 대폭 세금을 경감했지만, 이것은 결코 ‘옳은’ 정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념과
전혀 상관없이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이것은 조세의 공평성에서 어긋
난다는 것이다.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세금을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부자들이 세금
 때문에 투자를 못하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으며, 종부세 폐지에
따른 경제의 긍정적인 효과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규제 철폐만이 정답은 아니다”

정부가 최근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금산법 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각종
 규제를 철폐하려는 움직임일 보이는 것에도 쓴 소리를 냈다.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결코 경제를 살리는 능사가 될 수 없습
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에서 충분히 그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만약 전 정부가
부동산 억제 정책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랬다면 우리는 지난해 엄청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재앙을 맞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다소나마 충격이 덜했던 것은 바로 전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
때문이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당시 많이
올랐던 것은 전 세계적으로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각종 버블이 생기는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전 정부가 강한 부동산 규제 정책을 쓰지 않았다면 부동산 버블은 지금보다도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전 정부가 부동산 규제정책을 썼던 것이
옳았다고 봅니다."

이 교수는 부동산과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특히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리한 경기
부양은 인플레이션 문제 등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다시 투기에
불이 붙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이 교수가 근무하는 서울대 사회과학동 건물 옆에는 작은 꽃밭이 하나 있다. 둥굴레부터
시작해 매발톱 꽃 등 희귀하고 아기자기한 야생화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이 교수가
직접 가꾸는 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교수의 연구실에도 각종 꽃과 식물이 가득하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삶을 강조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환경보다도
훨씬 중요하다'며 환경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빈곤의 문제는 어느 때 어느 사회나 항상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서도 절대적인 빈곤의 문제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더군다나 지금 우리
정도의 경제수준이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고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환경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은 이념을 떠나 매우 중요한 이슈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공통의 목표인 것이죠.”

자연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원상 그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란다. 자연을
위한다고 손을 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에서 자라는 각종
수초며, 모래나 자갈, 갈대 등이 시멘트 등에 의해 훼손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마인드가 있다면 환경 친화적인
정책이 어떤 것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준구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68학번으로 졸업 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뉴욕주립대학교(올버니) 경제학과에서 미국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후 1984년부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경제학원론, 미시경제학, 재정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저술한 책으로는 <미시경제학>을 비롯해 <경제학원론> <재정학> <경제학 들어가기>
 <새 열린 경제학> <시장과 정부> <소득분배의 이론과 현실> 등이 있다.

현재 인터넷에서 홈페이지(www.jkl123.com)를 직접 운영하며 활발하게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취미로 꽃밭 가꾸기와 더불어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촬영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