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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도장2공장 안에 없었던 분들의 '소설'에 답한다-민중의 소리

[기자의 눈] 쌍용차 노조 음해하는 근거 없는 보도들

장명구 기자 jmg@vop.co.kr
쌍용차 사태가 마무리 된 이후 쏟아지는 보수언론들의 보도가 가관이다.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쌍용차 노조를 흠집내기 위한 온갖 확인되지 않은 보도와 의도적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 노조 음해는 검찰과 경찰이 적극 주도하고 보수언론이 퍼뜨리고 있는 양상이다.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폭행사건이 있었다고?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은 쌍용차 사태가 마무리 된 다음날인 7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공장 안에 남아 있던 노조원 630여 명 가운데 강경파 130여 명이 잡았던 주도권이 5일 오후 강온파 사이에 폭행사건이 발생한 뒤부터 온건파에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당시 강경파 핵심 노조간부가 온건파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며 "'이제 좀 그만하자'는 온건파들의 목소리를 억제시키며 힘겹게 농성을 이끌어 온 강경파 위주의 내부 분위기가 '평화적 해결' 쪽으로 기울었고 다음날 대화가 재개돼 사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 말의 의도는 뻔하다. 노조 집행부가 협상을 바라는 다수 '선량한' 노조원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쌍용차 농성 해산

쌍용차 노조가 농성 77일만에 노사협상을 타결짓고 해산했다. 조합원들이 보고대회를 마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민중의소리



과연 그랬을까?

보름동안 쌍용차 평택공장안에서 보고 들은 노조의 농성은 전 과정이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었다. 강경파와 온건파는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어떤 문제든, 특히 그것이 노조원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노조 지도부는 노조원들에게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42일만에 재개됐던 '끝장교섭'의 내용은 모두 조합원들에게 공개됐다. 협상을 정회할 때마다 '전조합원 보고대회'와 각 조장들까지 참여하는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교섭진행 상황을 고스란히 공개했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공장 안에 있던 기자들도 '엠바고'(일정한 시한까지 보도하지 않는다는 약속)를 전제로 그 내용을 취재할 수 있었다.

조 청장이 말한 5일은 경찰이 특공대까지 투입해 조립3,4공장과 도장1공장 옥상 위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날이다. 이날 오후 노조집행부 분위기는 심각했지만, 조 청장이 말한 '폭행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이날 오후 3시 30분께 도장2공장 4층에서는 전체 조합원 보고대회가 열렸다. 한상균 지부장은 이 자리에서 "사측이 뒤통수를 쳤다"면서도 "계속 협상을 통해서 사태를 풀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물밑으로 접촉하면서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가던 마당에 이뤄진 진압작전에 대한 분노였다. 그럼에도 그는 '협상'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노조 지도부가 심각했던 이유는 경찰의 진압양상을 미뤄볼 때 '실제로' 도장2공장 안으로까지 밀고 들어올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 경우 '화약고'나 다름없는 공장이 '불지옥'으로 변할 것은 뻔했다. 이 국면에서 결사항전을 택한다는 것은 노조 지도부로선 일생일대의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결사항전'이란 말 그대로 '죽음'을 감수해야만 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한상균 지부장은 그날 저녁 "지금이라도 자결하고픈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솥밥 먹던 조합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전쟁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정도로 여기는 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번뇌했을 순간이었다. 차라리, 혼자라면, 조합원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들이 아니라 홀몸이라면, 선택이 조금은 쉬웠을 지도 모르겠다. 한 지부장이 '협상'을 계속해 강조했던 이유는 '희생'을 막기 위해서였다.

복수의 조합원들은 조 청장이 발언한 대로 이날 오후 폭력이 벌어진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금시초문'이라고 전했다. 노조 관계자는 "강온파 간의 세력다툼이니 폭행사건이니 하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잘라 말했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것인데, 고립된 공장안에서 그런 폭행사건이 있었다면 모르는 게 이상한 것 아닐까?

조합원간에 갈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도장2공장으로 퇴각한 지 하루만에 노사 대표가 교섭을 끝내고 돌아온 뒤,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6일 오전 협상결과를 설명하는 '확대간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 노조관계자는 "조합원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 대타협의 정신으로 타결을 봐야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말했다. 또한 "잠정합의안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일부의견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지부장 뜻에 따르겠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고 전했다.

'확대간부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도장공장 4층에서 진행된 '전조합원 보고대회'에서 한 지부장은 '최종잠정합의안'을 설명했다. 여기저기서 합의내용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보고대회가 끝난 후에도 합의안에 불만을 품은 몇몇 조합원들은 "이런 안을 받으려고 70여일을 투쟁했냐"며 지부장에게 막말을 하는 등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조합원들이 만류하고 설득하면서 금세 잠잠해졌다.

도장2공장에서 있었던 갈등이라면 이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의견 차이 정도였다.

다만, 취재과정에서 '폭행사건'의 단초를 발견했다. 도장2공장에서 농성을 했던 한 조합원은 "농성중에 공장 밖에서 '산 자'들 사이에선 '노조 간부 한 명이 맞아서 이빨이 나갔다'는 등의 루머가 떠돌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가 나갔다는 소문의 주인공인 이 노조 간부는 농성이 끝난 날에도 이가 멀쩡했다.

'외부세력' 개입과 '군사위원회'.. '알카에다'라도 떴나?

이 정도는 그저 경찰이 자신들의 '공로'를 자랑하기 위해 꺼낸 애교(?)쯤으로 치고 넘어가자.

그런데, 검찰의 행태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노환균)는 9일 자료를 내고 "외부세력이 점거농성에 적극 개입했다"며 "이들은 순수한 노동운동 차원을 벗어나 군대조직을 모방해 농성 조합원들에게 제식훈련 등을 실시하는 등 공권력 투입에 대비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외부세력'이 평택공장 복지동 건물에 별도의 사무실을 설치하고, 점거농성을 주도한 '쌍용차 공동투쟁본부'안에 '군사위원회'를 만들려고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이들의 사무실에서 70여권의 이념서적이 발견됐으며, 사무실 벽에는 '주한미군 철수'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자료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무시무시한 '알카에다' 같은 집단이 저절로 연상되니 말이다.

쌍용자동차

5일 조립 3.4팀 옥상에서 쓰러진 노동자을 짓밟고 있는 경찰특공대ⓒ 금속노조 경남


조합원 집단구타하는 경찰특공대

5일 오전 8시 10분 조립 3,4팀 옥상 점거에 성공한 경찰특공대가 쓰러진 조합원을 삼단봉과 곤봉으로 집단구타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이명익 기자



복지동 노조 사무실 뒤편에는 평상시 산업안전위원들이 회의실로 쓰는 공간이 있다. 선거 때는 선관위원들이 쓰기도 하는 곳이다. 아마, 검찰이 발견했다는 '주한미군 철수' 현판(?)은 여기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2004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 당시 사용하던 '주한미군 철수하라'고 적힌 손펼침막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농성에서 '정리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손펼침막을 노조에서 사용했었는데, 그런 종류다.

그러면, 이념서적 70여권은 또 뭔가? 복지동 매점 옆에 노조에서 만든 작은 도서관이 있다. 평소에 일반 조합원들도 자주 이용하던 곳이란다. 실평수로 10여평 남짓 되는 이 곳에서 검찰이 '이념서적'을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 관계자는 "'태백산맥' 정도가 그나마 이념적이라면 이념적인 서적이고, 나머지는 다 일반서적인데, 도대체 검찰이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이 말한 '외부세력'도 수상하긴 마찬가지다. 파업 중이든 교섭 중이든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에는 항상 금속노조 간부들이 지원하게 돼 있다. 검찰 조직에도 대검이 있고, 고검이 있고, 지검이 있듯, 하나의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는 하나의 조직이다. 금속노조 아래 지부, 지회, 분회가 있다. 금속노조 간부가 개입한 것은 당연한 일인 셈이다.

노사 문제로 국한해서 '외부세력'이라고 한다면, 경찰 또한 '외부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사측이 투입한 '용역'들도 '외부세력'이라고 반박이 나올 수 있다. 중재에 나섰던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 민주당 정장선 의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도 외부세력이다. 평택시장도 외부세력이다.

적어도 기자가 공장 안에 있는 동안 공장 안 어느곳에서도 '제식훈련' 따위는 전혀 없었다. 대부분 국방의 의무를 마친 조합원들이 굳이 제식훈련을 받을 일이라곤 예비군훈련 정도로 충분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런 자료를 낸 데에는 다른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한 노조 관계자는 "이번 쌍용차 사태를 빌미로 조직사건을 기획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려는 의도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자료를 낸 대검 공안부장 노환균 검사님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했다.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물과 식량?

보수언론들의 공격 포인트는 좀더 '생활밀착형'이다. 아마도, 진보세력이 농성 내내 '물과 식량 지원 중단'을 규탄했기 때문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물과 식량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보수언론들은 농성이 끝난 뒤 도장2공장 내부가 7일 공개되자 일제히 '호화판 농성'이라고 노조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동안 쌍용차 노조나 좌파진영의 앓는 소리와는 달리 도장2공장 식량창고에는 10㎏과 20㎏짜리 쌀 38포대, 컵라면 4천여 개, 2리터짜리 생수 1천 200여개와 0.5리터짜리 400여개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 숫자는 대체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호화판 농성' 타령의 근거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초등학교 산수에서는 덧셈, 뺄셈, 곱셈 뿐 아니라 '분수'도 가르친다. 즉, 식량창고에서 발견된 그 식량과 물은 농성 조합원 수로 나눈 다음에야 얼마나 충분한 양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5일까지만 해도 도장공장 안에는 6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 숫자로 물의 양을 계산해보자. 발견된 물이 총 2600리터이므로 조합원 한 명당 4.3리터 가량 돌아가는 양이다. 푹푹 찌는 더위에 목을 살짝 축이는 정도로 아껴서 마시면 한 사람이 대략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는 분량이다.

쌀도 대체로 비슷한 분량이다. 게다가 밥을 짓는 데는 마시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호화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호화판이라고 보도하는 그 보수언론 기자들을 딱 그런 조건에서 열흘 간만 지내보라고 '권고'하고 싶다. 그래도 '호화판' 타령이 나올지 궁금하다.

새총 쏘는 사측 직원들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4일, 일부 사측 직원들이 노조원들을 향해 새총을 발사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기자가 처음 도장2공장에 들어갔을 때 식량창고 안을 살펴 본 적이 있다. 도대체 얼마나 식량을 비축해놓고 있는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장기간 고립된 상태에서 농성을 진행할 경우 비축해 둔 식량이 부족하면 '사기'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농성을 할 때는 물과 식량을 기본적으로 여유있게 비축해둬야 한다. 직접 본 느낌은 '이 정도 식량으로 이 많은 인원이 3일이나 버틸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노조 관계자도 당시 "잘해야 3일 정도 버틸 물량"이라고 했다.

그런데, 노조와 조합원들은 그 식량과 물을 아끼고 아끼고 또 아껴가며 농성을 이어나갔다. 농성이 장기화 될 경우 식량과 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항복을 해야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접 본 조합원들의 '물자절약' 작전은 눈물 겨운 것이었다. 장마철에는 빗물을 받아 씻는 물과 화장실 물로 그나마 대체할 수 있었다. 그런 후에는 소화전과 공장기계설비에서 나오는 녹물을 하루정도 가라앉혀서 끓이고, 그 끓인 물을 다시 하루정도 가라 앉힌 물로 밥도 하고 먹는 물로도 이용했다. 밥도 주먹밥 뿐이고 '국'이나 찌개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조합원들은 비상시를 대비해 비축해 놓은 생수와 비상식량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손을 대지 않았다. 왜? 사측과 경찰이 물 반입을 막았기 때문에 더더욱 아껴 쓸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조합원들 스스로의 결단이라고 보는 게 맞다는 판단이다.

농성 중에 만난 조립3팀의 한 조합원은 "누가 원해서 주먹밥 먹고 열흘 넘게 씻지도 못하고 싶겠냐"면서도 "(정부나 사측에서) 원하는 만큼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노조원들이 77일 간 옥쇄파업을 벌이는 동안 공장 안에는 KBS, MBC, 한겨레 등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를 했었고, <민중의소리>를 비롯한 5명의 기자들이 끝까지 남아 취재를 벌였다. 현장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보수언론들이 농성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조를 비난하는 것은 어이 없는 일이다.

물론,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이든 노조를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정성이 조금이나마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77일 간 농성 중에 벌어졌던 사측 용역들의 잔인무도한 폭력과 경찰이 행한 폭력에도 똑같은 잣대로 비판해야 마땅할 것이다. 힘있는 자들의 폭력은 못본척하면서 상대적 약자인 노조만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