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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회사 왜 그만두나?"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회사 왜 그만두나?"

오마이뉴스 | 입력 2010.03.04 10:21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
취재정리 : 손병관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 특별취재팀






프랑스 내에서도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1순위로 꼽히는 로레알이 회사 돈을 들여 운영하는 직원용 크레쉬(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엘렌.
ⓒ 남소연
여직원이 출산휴가를 마치면 승진과 함께 원하는 부서로 옮겨주는 회사, 3개월 육아휴가에 직원들을 위한 탁아소를 둔 회사, 학교가 쉬는 수요일마다 직원들에게 휴가(무급)를 택할 권리를 주고, 직원들의 '장 보기'까지 거들어주는 회사.

< 오마이뉴스 > '유러피언 드림 취재팀'이 지난 1일 찾아간 프랑스 화장품회사 로레알(L'Oreal)의 모습이다.

101년 역사에 전세계 6만7000여 명의 직원을 둔 로레알은 프랑스 내에서도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1순위로 꼽히는 곳. 일과 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한국의 기혼직장인들에게도 로레알은 '꿈의 직장'으로 비춰졌다.

로레알의 사원교육 담당 직원 소피 메이어씨는 2년 전 세쌍둥이를 임신했다. 이미 두 살배기 여아가 있는 터라 3명의 아기가 한꺼번에 생긴 것이 그에게는 이만저만한 고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세쌍둥이를 놔두고 어떻게 회사를 다니냐?"는 핀잔이 나올 만했지만, 적어도 그는 회사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세쌍둥이 엄마, 11개월 쉰 뒤 원하던 부서로 승진 발령

로레알은 그에게 11개월의 출산휴가를 줬고, 그가 복직할 무렵에는 평소 원하던 대로 약국사업부의 인력자원담당자로 승진 발령시켰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들어 임신여성을 회사에서 결국 그만두게 하는 한국의 기업문화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사례다. 임신을 확인해주는 병원 진단서가 있는 한 출산휴가가 끝난 후 한 달이 지난 시점까지는 임산부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한 프랑스의 국내법도 워킹맘들의 직장생활에 든든한 방어막이 되고 있다.


로레알의 사원교육 담당 직원 소피 메이어(Sophie Meyer)씨는 세쌍둥이를 기르는 워킹맘이다.
ⓒ 남소연


메이어씨는 "직장상사가 '나중에 휴가를 따로 내줄 테니 일정보다 약간 당겨서 회사로 돌아오라'는 언질을 줬을 뿐 내 업무를 대신 떠맡는 것을 불편해하는 동료들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세쌍둥이를 낳은 메이어씨의 경우 최대 11개월의 출산휴가가 주어졌지만, 대부분의 여직원들은 아이를 낳으면 16주의 출산휴가를 얻는다.

로레알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적잖은 회사 돈을 들여 직원용 크레쉬(탁아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맞벌이 부부들의 보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살 이하 아동들을 맡길 수 있는 크레쉬를 운영하고 있는데,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태부족이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들의 원성이 대단하다. 로레알은 회사 차원의 크레쉬를 2006년부터 운영함으로써 정부가 할 일을 대행하고 있다.

취재팀이 방문한 로레알 본사 인근의 한 크레쉬는 30명의 보육을 책임지고 있는데, 14명의 보육교사 중에는 간호사와 심리학 전공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로레알이 크레쉬를 이용하는 직원의 자녀를 위해 매년 부담하는 돈은 1인당 5000~6000 유로(한화 약 750~900만원). 회사 크레쉬를 이용하는 직원들에게 최대 900만원을 지원하는 셈이다.

매주 수요일 학교 쉬는 프랑스... 자녀 둔 직원들도 휴가 가능

취학연령대 자녀를 둔 직원들을 위한 수요휴가를 시행하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에서는 수요일을 제외한 주4일 동안 학교에 가는데, 수요일에 아이들과 여가를 보내려는 직원들은 본인 의향에 따라 휴가를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비록 무급휴가지만, 주중 업무에 지쳐 주말에도 늦잠자기 일쑤인 부모들에게 평일에 부모노릇 한 번 할 기회를 회사가 주는 셈이다.

수요휴가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쓸 수 있는데, 로레알 본사의 경우 3% 정도의 직원들이 수요휴가를 낸다고 한다. 크레쉬와 수요휴가 이외에도 직원들의 사소한 행정업무나 장보기를 대행해주는 직원을 따로 둔 것도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의 관공서는 비교적 느린 일처리 때문에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으려면 짧게는 몇 시간, 길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많은데, 로레알은 직원들이 업무에 더욱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업무만 담당하는 직원을 둔 것이다.

퇴근 후 장 보는 시간을 절약하려는 직원들이 물품 리스트를 제출하면 회사가 할인점에 배달 서비스를 대신 요청하는 제도는 "회사가 이런 일까지 해줄 필요가 있나"라는 의문을 들게 했지만, 직원들의 가사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회사의 배려로 이해됐다.

'여성친화' 강조하는 로레알... "저출산은 개별기업에도 타격"





로레알이 회사 돈을 들여 운영하는 직원용 크레쉬(탁아소)를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이 찾아가 둘러보고 있다.

ⓒ 남소연


로레알은 직장내 양성평등을 위한 배려가 "노조로 대표되는 직원들의 압박이 아니라 경영진의 자체적인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백화점 사업부의 인력자원 담당자인 엠마뉴엘 파브르씨는 "노조의 관심사는 주로 임금(인상)에 맞춰져 있는데, 크레쉬 같은 것들은 노조가 요구해서 하는 게 아니라 경영진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차별문제 개선을 담당하는 고위간부 장-클로드 르그랑씨에게는 "이런 일들을 하려면 회사가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많지 않나?"고 물었다. 직원들의 복지를 최대한 줄여서 최대 이윤을 뽑아내려는 한국의 기업문화와 비교하면, 로레알의 이러한 방침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르그랑씨는 "여성들의 저출산으로 인해 미래의 노동력이 줄어들게 되면 개별 기업도 그만큼 타격을 입게 된다"며 "인구가 감소할 먼 훗날을 생각하면 이런 것도 미래를 위한 기업의 투자"라고 설명했다.

물론, 대다수의 프랑스 기업들이 로레알처럼 직장여성에 친화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파브르씨는 "로레알 같은 대기업은 출산휴가자의 결원을 채우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그래서 정부가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녀를 둔 직원(특히 워킹맘)을 위한 로레알의 파격적인 조치들이 화장품의 주요 고객들인 여성을 의식한 측면도 없지 않다. 회사 간부들도 "여성들을 주로 상대해야 하는 화장품회사가 보다 많은 여직원들을 채용하고, 이들이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로레알 백화점 사업부의 인력자원 담당자인 엠마뉴엘 파브르(Emmanuelle Favre)씨는 "아이를 낳은 후 회사를 그만두는 여직원의 수가 어느 정도 되냐"는 질문에 "출산휴가 중에도 봉급이 다 나오는데, 누가 쉬면서 돈 버는 회사를 그만두겠냐? 미치지 않고서야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 남소연


파브르씨에게 "아이를 낳은 후 회사를 그만두는 여직원의 수가 어느 정도 되냐"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아주 직설적이었다.

"출산휴가 중에도 봉급이 다 나오는데, 누가 쉬면서 돈 버는 회사를 그만두겠냐? 미치지 않고서야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은 없다."

오마이뉴스 <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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