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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nification

미들즈브러와 천리마축구단



1966년 영국 북동부의 촌도시 미들즈브러(이하 "보로")에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인구 10만 명의 도시가 한반도에서 날라 온 무명의 축구팀에 온통 사로잡힌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까지 보로라는 도시를 잘 몰랐다. 적어도 4번째 프리미어리거 '라이언 킹' 이동국이 미들즈보로 FC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보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코리아'를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코리아에서 온 일명 '천리마 축구단'(북한대표팀의 닉)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 글은 그 축구단과 보로 사람들과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쇠락해가는 강변도시 보로에 일단의 촌스러운 축구선수들이 '비밀리에' 잠입한다.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별 볼일 없던 이 축구팀은 그러나 월드컵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리, 가장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낸 후,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보로 사람들은 이후 그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다.

이 축구단 이야기는 이제 전설적인 클래식이 되었다. 사람들은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한 사실은 잘 안다. 그러나 이 축구단과, 어느덧 그들의 열혈 서포터로 변해간 보로시민들과의 유쾌한 우정이야기는 잘 모른다.

△ 아주 유명한 사진 - 아주리 대 천리마 ⓒ 초모룽마님 제공

입으로 구전되어 왔으나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보로의 노인네들 외에는 점차 잊혀져가던 이 우정이야기는, 영국의 다큐 감독 다니엘 고든이 직접 북한을 오가며 만든 “천리마축구단(The Game of Their Lives, 2002)”이라는 영화를 통해 극적으로 되살아나게 된다.

이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몰락해가는 ‘해가지지 않는 제국’, 숨 막힐 듯한 자본의 질서에 편입되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영국, 퇴색한 ‘축구 종가’에 불현듯 나타나 ‘당대의 강자’ 아주리 군단을 꺾었던 이 수수께끼 같은 미니 축구단(평균 신장 165cm로 보나, 선수단 규모로 보나)은 희망을 잃어버린 보로 시민들에게 환희와 보람을 던져 주었다.

누구를 응원할지 몰라 멋쩍어하던(잉글랜드는 런던에서만, 북한은 보로에서만 경기했다) 그들에게 드디어 할 일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보로 시민들과 만난 지 오래지 않아 그 축구단은 갑자기 사라졌다.

그 후 40여 년 동안 보로는 물론이고 영국 사람들은 그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고든은 ‘그들은 어찌 되었나?’하고 궁금해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 그는 보로 사람들이 아직도 그 축구단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열렬한 축구팬의 의무감으로, 어렸을 때 들었던 ‘꿈과 희망’을 되살리고 싶었다. 그는 까다로운 북한당국과 협상에 착수했고 마침내 촬영 허가를 얻어낸다.

1966년 월드컵을 앞두고, 영국 외무성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조건을 줄줄이 달아 북한대표팀에 비자를 발급한다. '제발 오지 말았으면, 문제나 일으키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을 게다. 그 축구단이 얼마나 큰 감동과 희망을 줄는지, 월드컵의 역사를 얼마나 빛낼지 전혀 예상치 못하고 말이다.

보로에 잠입한 북한대표팀은 ‘비밀리에’ 행동했고, 보로 시민들도 그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소련-북한의 첫 경기를 보기 위해 보로의 에어섬파크(Ayresome Park)에 들어찬 관중들 중 아무도 북한선수들의 이름을 몰랐다. 영국 사람들은 한국전쟁을 통해서만 북한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북한이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우승확률 1/1000. 같은 조에 편성된 국가는 이탈리아, 소련, 칠레. 아주리 군단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이 강력한 우승후보고, 소련은 전설적 골키퍼 야신이 건재하고 있었으며, 칠레는 4년 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남미의 다크호스였다.

과연, 얼떨결에 첫 경기에 나선 천리마축구단은 소련에 0-3으로 대패를 당한다. 그러나 보로의 수준 높은 축구팬들은 경험과 기술은 부족하나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정직하고 용기 있고 순수하며, 플레이는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팀을 이내 알아본다. 북한대표팀에 슬슬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 상대는 칠레. 북한은 경기종료 2분전까지 0-1로 뒤지고 있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면 8강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대표하여, 유럽과 남미 중 한둘은 꼭 이기고 싶었던’ 그들은 결코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미드필더 박승진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진다. 보로는 열광했다.

마지막 상대 이탈리아. 아주리는 리바, 리베라, 파게티 등 경험, 기술, 네임밸류면에서 북한하고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스쿼드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를 앞두고 북한팀에 서포터들이 대거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보로 사람들이었다. 천리마축구단이 보로 사람들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다.

북한의 축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느려터진 당시의 축구스타일”에 질려버린 보로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반쯤은 축구전문가인 고든은 천리마축구단이 왜 '기적'을 만들어내고 보로 사람들을 어떻게 매료시켰는지 설명한다. “1966년 북한은 2000년대의 대세인 스피디하고 빠른 축구 스타일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비전을 제시했던 것이다.” 최강의 팀도 이길 수 있다는 순수한 자신감이 그 비전의 비결이었다.

보로 사람들은 북한 대표팀과 함께 통쾌한 음모를 꾸미기로 묵언의 합의를 봤다. 보로는 북한을 응원하여 8강에 올리고, 북한은 잉글랜드의 우승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이탈리아를 떨어뜨리고.. 전반 41분, 박두익의 중거리 한방으로 아주리 군단은 붕괴되고, 북한은 소련에 이어 8강에 진출한다.

소련 3승, 북한 1승 1무 1패, 이탈리아 1승 2패, 칠레 1무 2패

△ 환상의 스토리 ⓒ 초모룽마님 제공


보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고향클럽이나 잉글랜드가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이 천리마 축구단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아마 월드컵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예선 탈락한 이탈리아는 새벽에 몰래 귀국했으나 토마토 세례를 받았다)

북한 선수들은 보로 사람들의 응원에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 기뻤다. 보로 사람들에게 북한은 제2의 홈팀이었다. 그들은 천리마축구단을 졸졸 따라다녔고, 노인과 어린이들까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일방적으로 북한을 응원했으며, 급기야 8강전을 위해 리버풀로 향하는 천리마와 함께 무려 3,000명이나 원정길에 오른다.

북한은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전반 20분까지 내리 세골을 몰아쳐 3-0으로 리드한다. 관중들은 더 많은 골을 넣으라 합창한다. 그러나 경험부족 탓인가. 북한은 포르투갈에 이후 내리 5골(2골은 PK)을 내주며 3-5로 역전패 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끝났고 천리마는 귀국길에 오른다.

보로 사람들은 그 후에도 코리아 선수들을 잊지 못했고, 북한 선수들은 아직도 그때의 보로 사람들의 성원에 감사하고 있다. 이제는 노인이 된 주장 박두익과 생존 선수들은 그 보로를 잊지 못하고 고든과 함께 2002년 어렵사리 영국을 다시 찾아오게 된다.

△ 환영 ⓒ 초모룽마님 제공


36년 만에 천리마 축구단이 돌아온다고 했을 때, 보로의 반응을 보자.

▷ The Return of Heroes! 영웅들의 귀환
▷ THE KOREANS ARE COMING! 코리아사람들이 온다!
▷ Koreans of 1966 are back in town 1966년 코리아 사람들이 우리 마을로 돌아온다!
▷ Memories of one of the most famous moments in Boro's history will come flooding back for many supporters. 보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의 하나가 다시 살아난다!
▷ Now the special bond between the Koreans and Boro supporters is set to be recreated..! 이제 그 코리아 사람들과 보로 서포터들 사이의 특별한 유대관계가 36년 만에 다시 만들어질 판이다!


△ 영국을 다시 찾은 늙은 선수들 ⓒ 초모룽마님 제공


영국 사람들은 북한의 이 '영웅'들이 공산주의 체제의 ‘희생양’이 되어(투옥되어) 비참하게 말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든은 생존한 7명 모두 잘 지내고 있고 보로 사람들을 아직 잊지 않고 있으며, 다시 영국에 가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북한은 이들의 영국 방문을 허용했고, 영국 축구협회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한다.

고든은 "북한선수들은, 서양 사람들이 자신들의 스토리를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전한다. 자신들이 잊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한 것이다. 레프트 하프로 뛰었던 한봉진은 고든에게 “나는 영국 사람을 사랑한다. 근데 1966년 이후 영국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당시 우리들을 초대해 만찬까지 베풀었던 보로의 시장님은 잘 계시냐?”고 물었다. 시장이 죽었다고 하자 그는 매우 슬퍼했다.

박두익은 “영국이 우리를 적으로 간주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영국(사람들)은 우리를 환영했고, 기립박수를 쳐줬다.”고 말한다. 그는 “보로 시민들의 태도가 우리들의 경기에 확고한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박두익은 인터뷰에서 고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40년 전) 영국 사람들은 우리를 따뜻이 대해주었다. 나는 거기에서 축구는 이기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축구는... 평화를 불러온다.”

△ 고든과 캡틴 박두익 ⓒ 초모룽마님 제공


축구를 통해 상호간에 쌓였던 오해와 편견, 왜곡이 모두 풀렸다. 1966년 영국정부는 마지못해 입국을 허용했고, 영국 사람들은 한국전쟁을 기억해내며 북한을 적대시하거나 아예 무시해버렸다. 북한대표팀은 그들대로 잔뜩 위축되어 영국 사람들과 언론을 피해 비밀리에 훈련했다. 서로를 불신했다.

그러나 축구장에서 서포터들과 시민들은, 축구를 함에 있어 진정성과 용기, 정직한 자세를 가졌다면 그 누구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고, 또 마땅히 응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 환영을 받은 사람들도 서포터들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서로 으르렁대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을 영국(사람들)과 북한(선수들)은 이제 축구라는 소통의 매개를 통해 영원히 잊히지 않을 우정을 쌓게 되었다.

소통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필경 담을 쌓고 서로에게 편견을 갖는다. 보로 사람들과 고든, 그리고 북한선수들은 축구공을 통해 직접 소통을 시도했고 서로의 진정성을 확인했다.



ⓒ 초모룽마

출처 :http://cafe.daum.net/CR-madness/700i/6?docid=1DDzq|700i|6|20080222211244&q=%C3%B5%B8%AE%B8%B6%20%C3%E0%B1%B8%B4%DC&srchid=CCB1DDzq|700i|6|20080222211244

인터넷을 뒤지다 꼭 간직하고 싶은 글이라 출처를 밝히며 퍼왔습니다